1980년대, 카세트테이프를 들고 다니며 팝송 가사 한 줄 한 줄을 받아 적던 그 시절, 나의 방 안에는 늘 보랏빛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프린스(Prince)의 Purple Rain.
어느 날 친구가 조용히 건네준 한 장의 테이프. 그 속엔 낯설고도 강렬한 사운드가 있었다. 팝도 아니고 록도 아니고, 알앤비도 아닌 듯한 그 음악은 나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프린스는 내 청춘의 일부가 되었다. ‘모든 악기를 다 다룰 줄 아는 천재’, ‘보랏빛 무대 위의 전설’이라는 수식어보다 내겐 그냥 마음을 흔드는 아티스트였다. 그리고 Purple Rain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나의 감정과 추억, 그리고 사춘기적 슬픔을 함께 흘려보낸 하나의 공간이었다.
미니애폴리스의 작은 왕자, 프린스
프린스의 본명은 프린스 로저스 넬슨(Prince Rogers Nelson). 1958년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재즈 피아니스트, 어머니는 가수였던 그는 말 그대로 음악 집안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마냥 따뜻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가난은 그를 조용하지만 깊은 내면의 세계로 이끌었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와 기타, 드럼 등을 독학으로 연주하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갔다.
10대 후반, 그는 '프린스'라는 이름으로 데뷔하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자신의 첫 앨범의 모든 악기를 혼자 연주하고, 작사와 작곡, 프로듀싱까지 도맡았다. 당시로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의 음악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팝, 록, 펑크, 소울, 알앤비… 어떤 장르로도 완전히 정의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불분명함이 그의 매력이었다.
퍼플레인, 그 이상의 음악
1984년, 프린스는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키는 작품을 내놓는다. 바로 앨범 Purple Rain. 동명의 영화도 함께 개봉하며 그는 단순한 가수에서 예술가로, 그리고 상징이 되었다.
Purple Rain 앨범은 그 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록 보컬 퍼포먼스를 포함해 여러 부문을 수상했고, 수록곡들은 지금도 미국 전역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재생된다. 앨범의 타이틀곡 Purple Rain은 8분이 넘는 장대한 곡으로, 기타 솔로와 감정을 폭발시키는 프린스의 보컬이 인상적이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감정이 묘하게 뒤섞인다. 기쁨, 아련함, 후회, 그리고 희망. 어릴 적, 부모님 몰래 라디오를 켜놓고 이 곡을 듣다가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는 이유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그 감정은 음악이 갖는 순수한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다시 계속 만나는 프린스
미국에 이주해 살면서 가끔 차를 몰고 5번 프리웨이를 달릴 때면 프린스의 노래를 튼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When Doves Cry나 Little Red Corvette을 들으면, 마치 미국의 한가운데, 미네소타의 겨울을 품은 도시를 지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2016년, 프린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얼바인의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멍하니 뉴스를 바라보았다. 마치 나의 청춘의 한 조각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미국 전역의 건물들이 보라색 조명으로 물들었다. 라스베이거스의 벨라지오 분수도 Purple Rain에 맞춰 춤을 췄고, 타임스퀘어 전광판에는 그의 모습이 떴다.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전설은 그렇게 살아 있다
프린스는 단지 음악을 잘 만든 뮤지션이 아니었다. 그는 늘 자유로웠고, 상업성보다는 예술을 선택했다. 음반사와의 갈등 끝에 자신의 이름조차 포기하고 기호(기억나는가? 기호 같은 이상한 문자로 이름을 바꿨던 일)로 활동했던 그는, 철저하게 자신만의 음악적 신념을 지켰던 예술가였다.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프린스는 어쩌면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Purple Rain은 여전히 수많은 이들의 플레이리스트에 남아 있다. 그의 음악은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세상에 더는 프린스가 없지만, 그의 음악은 오히려 더 명확하게 우리 곁에 살아 숨 쉰다.
나에게 Purple Rain은 음악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감정이고 기억이며, 지나간 시절의 빛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내 귓가엔 보랏빛 선율이 흐른다.
"I never meant to cause you any sorrow, I never meant to cause you any pain…"
프린스, 당신의 보랏빛 음악에 감사한다. 그리고 아직도 당신이 그리운 한 사람으로서, 오늘도 다시 한 번 Purple Rain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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