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가족과 함께 동유럽 여행을 떠났던 기억은 지금도 마음 깊이 남아 있습니다. 체코 프라하에 도착한 날,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를 걷다가 한 극장 앞에서 우연히 눈길을 끄는 포스터를 발견했습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목각 인형, 즉 마리오네트로 상연하는 공연이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이나 오페라에 큰 관심은 많은 저로서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문화 체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보태어 바로 공연을 보기로 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당시 초등학생이었고, 동유럽의 낯선 언어와 음식에 조금 지쳐 있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연을 본 순간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목각 인형, 그리고 웅장하면서도 익숙한 멜로디가 어우러진 공연에 아이들은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웃음과 놀라움, 그리고 마지막엔 “또 보고 싶다”는 말까지 들었을 때, 이 선택이 얼마나 잘한 결정이었는지 실감했습니다.
이 공연은 프라하의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Národní divadlo marionet)’에서 관람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곳은 1991년부터 지금까지 오직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돈 지오반니’를 공연하고 있는 극장으로, 프라하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문화 프로그램 중 하나였습니다. 모차르트가 실제로 ‘돈 지오반니’를 초연한 도시인 만큼, 그 의미와 상징성도 특별했습니다.
‘돈 지오반니’는 방탕한 귀족이 다양한 여인을 유혹하며 살아가다가, 결국 자신이 죽인 기사장의 유령에게 심판받고 지옥에 끌려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악인의 몰락이라기보다는 인간 욕망, 자유의지, 도덕적 책임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라 더욱 인상 깊습니다.
이 오페라에는 유명한 아리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음악적으로도 큰 감동을 줍니다.
- "Là ci darem la mano" (우리 손을 맞잡고): 돈 지오반니가 젤리나를 유혹하며 부르는 곡으로, 달콤한 멜로디 속에 이중적인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 "Fin ch'han dal vino" (샴페인 아리아):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돈 지오반니의 방탕한 삶과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곡입니다.
- "Deh, vieni alla finestra": 사랑을 속삭이는 부드러운 세레나데로, 오페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이끌어주는 명곡입니다.
아이들은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페라의 감정은 음악과 인형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되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공연장을 나서며 한참을 돈 지오반니에 대해 이야기했을 정도였습니다. 저 역시 그날 이후로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도 때때로 유튜브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돈 지오반니의 아리아를 들으며 그날의 감동을 다시 떠올립니다.
유명한 연주 앨범으로는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의 빈 필하모닉 버전 그리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해석이 담긴 베를린 필하모닉 버전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는 드라마틱한 표현과 섬세한 해석으로 유명합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는 드라마틱한 표현과 섬세한 해석으로 유명합니다.둘 다 극적인 표현과 완성도 높은 연주로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죠. 최근에는 영상 플랫폼에서도 다양한 연출과 캐스팅으로 제작된 돈 지오반니 공연을 쉽게 감상할 수 있어 좋습니다.
‘돈 지오반니’는 모차르트 오페라 중에서도 철학적인 깊이와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희극적인 요소와 비극적인 주제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단순한 오락 이상의 예술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두고 “가장 인간적인 오페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프라하에서의 이 작은 공연은 우리 가족에게 아주 큰 선물이었습니다. 여행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그 도시의 문화와 감정을 체험할 때 비로소 진짜가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단지 즐거운 추억을 넘어,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감수성을 자극해준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혹시 체코 프라하를 여행할 계획이 있으시다면, 관광지뿐 아니라 이렇게 특별한 문화 공연도 함께 경험해 보시길 진심으로 추천드립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라면, 그 추억은 더 오래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음악은 어떤 체험과 합쳐져 색다른 감동을 주곤 합니다.